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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이슬람 철학 "2부"

by Blissful Korea Journey 2024. 4. 10.

이븐 시나 

이븐 시나는 우즈베키스탄 인으로 980년에 태어나 1037년까지 두시 부하라에서 살았으며 그의 두뇌는 10살의 어린 나이에 아라비아의 많은 시를 외울 만큼 특출 났다. 그 뒤 논리학이나 형이상학을 공부하다 머지않아 그의 스승보다 능력을 넘어 18살이 될 때까지 혼자 공부하였다. 이때 그의 총명함은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을 40번이나 외울 만큼 공부에 진심이었다. 이후 그때부터 벌써 총명 받는 의사로 인정받고 있었다. 하지만 이의 아버지가 사망 후 그가 일하던 사만 왕조가 전쟁에서 패하자 그의 생활은 불안정하게 되었다. 당시의 그가 살고 있는 페르시아 제국은 이미 혼란한 상황이었으나 여기에 게이치 않고 그만의 학문을 계속해서  발전시켰다. 그는 여기저기 페르시아의 여러 도시들을 떠돌아다니다 카즈원이라는 곳에서 정착하여 의사 생활을 시작하였지만 환경이 그의 학술적인 일을 할 수 있을만한 곳은 없었다. 이후 여러 곳을 돌아다니다 부이왕조가 통치하는 하마단이라는 곳에 도착하여 부이왕조의 보호아래 잊서야 정착할 수 있었다. 그때 치유의 서와 의학전범이라는 책을 쓰기 시작하였다.

  이후 계속하여 하마단에서 지내다 1022년에 부이왕조가 죽자 다시 많은 고난을 겪게 되었다. 결국에는 이스파한으로 거처를 옮겼고 그곳에서 안정을 찾을 수 있었다. 새로 옮긴 이스파한에서 마침내 그는 치유의 서 와 의학전범의  책을 완성할 수 있었다. 그 뒤로 그는 계속해서 활동하였으며 1037년에 하마단에서 전쟁 요원으로 출병하다가 결국에서 생을 마감하게 되었다.

이븐 시나가 연구한 철학 체계에 있어서 아직까지 여러 방면으로 논급되 지안 이 중에서 일반적인 존재의 문제인 형이상학이다.

여기에서 공중 부유 인간설을 아비센나는 실존한다고 말했다. 그가 말한 논리는 완전한 진공상태의 놓인 인간은 어떠한 공기의 촉감을 느낄 수 없으며 그 상황에서 무엇인가 느낄 수 있는 것이 있다면 자신의 존재 자체를 의미하며 이로부터 이븐 시나는 형이상학에 대학여 독자성을 주장하였다.

 그 밖에도 중세시대와 근대시대의 철학적 사상에 가능성이나 보편성등 여러 가지 문제점에 대해 앞장서 많은 결과를 남겼다. 다른 한편으로 독자척으로 조명 철학이라는 체계를 생각하였다.

이븐 시나의 업적

이븐 시나의 업적으로는 크게 아라비아 철학에 있어서 최고라고 불릴 울릴 만큼 토마스 아퀴나스에게 지대한 영향력을 미쳤다. 

이로 인하여 유럽에서 12세기 후반에 쇠퇴했던 아리스토텔레스를 다시 흥하게 만든 계기가 되었으며 논리학에도 영향력을 미쳤다.

또한  영혼의 기능을 심리학에서 분리하여 유럽의 스콜라 철학의 기준이 되기도 하였다.이 당시에 자연과학에도 영향력을 미쳤으며 연금술사들이 맹신하던 금속의 성분의 대한 변화의 가능성에 대해서도 부정하였다. 그는 연금술사들이 만든 귀금속에 대해서는 모두 가짜라고 주장하였다. 그 밖의 수학, 물리학, 그리고 음악 등에서도 역구하였다.

가잘리와 철학 비판

가잘리 그는 1058년도에 태어나 111년까지 많은 영향을 미쳤다. 그의 본명은 아부 하미드 무함마드 이븐 무함마드 알가잘리로 무슬림 계의 동방의 이슬람 신학자로서 철학이나 sufism에 중요한 인물 중의 한 명이다. 그는 바그다드에서 상인인 니잠 알물크의 지위를 얻어 4년 동안 니자미야의 학원교수가 도었으나 그가 재임하는 동안 이븐시나 등의 철학서를 연구하였느냐 끝내 납득하지 못하고 철학자의 모순이라는 책을 썼다. 결국은 종교적인 스트레스로와 또 다른 원인으로 명예로운 관직을 저버리고 평범한 피수행자로서 여러 지방을 떠 돌아다녔다. 그 후 다시 고향으로 돌아와 세상을 떠났다. 

 가잘리는 아리스토텔레스와 신플라톤파 철학을 가장 잘 이해했고 또한 이를 비판하였다.

그리고 인격적 체험과 신비주의적 체험을 기초로 하여 신학과 법학 그리고 수피즘을 하나로 재구성함으로써 대립하고 있던 수피즘과 신학. 법학자들이 이슬람교도의 거리를 좁힐 수 있으로써 이는 이슬람 종교에 가장 중요한 업적 되었다. 그는 처음에는 법학과 신학자로서 성공하였으나 종교에 정신적 동요로 종교학이나 특히 철학파를 경험한 뒤 마침내 수피즘에 도달할 수 있게 되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영향력으로 이슬람 철학자들에게 꾸란과 같이 신의 창성한 세상은 신께 일정기간 동안 고하지 않는다는 것은  모순으로 부정했지만 가잘리는 이는 태양에 비유하며 빛과 태양은 동시에 존재하는 것으로 신의 창세 역시 이와 같이 본질적인 문제이라고 말하며 시간적이 문제가 아니라고 부정하였다. 보편적으로 철학자들은 본질과 시간적인 문제를 혼동하고 있다고 비판하였다. 한 예로 이슬람 여러 곳에서 저자 아비센나의 무신론 이 비난당하는 사태까지 벌어지게 되었다. 이유 역시 철학 비판에 있어서 원래의 철학적 사상을 갔고 있던 신자들의 부정적이 영향 때문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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